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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롤은 질병이다 (부제 : 혐오 사회의 기원)
    기타/일기 2020. 10. 23. 20:10

    리그오브레전드를 시즌 1부터 했다. 그땐 시즌이라는 말도 없었지만.

     

    한국 서버가 없어서 인벤에서 클라이언트를 받아서 북미 서버에 들어가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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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한국 서버가 정식으로 추가되었다. 그리고 패드립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한국 온라인 게임 시장이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그 십수년 되는 역사 속에서 '그런 종류의 채팅'이 난무하는 게임은 그동안 한 번도 없었다. 겟앰프드, 스타1(유즈맵 포함), 서든, 바람, 메이플, 카트, 리니지, ... 채팅칠 시간도 없는 게임들부터 채팅하는게 메인인 게임까지 정말 많은 게임들이 있었고 대한민국 10대, 20대는 99% 안다고 보장할 수 있는 그런 게임들도 있었는데 어떤 게임에서도 그런 문화는 없었다.

     

    즉, 상대방을 욕하고 현피를 뜨는 경우는 있었어도, 엄마와 아빠를 걸고 능욕에 가까운 조롱을 쏟아내는 채팅은 롤 이전에 없었다.

     

    신기할 정도로 롤에는 그런 욕 문화가 초고속으로 스며들어갔다.

     

    다들 알다시피 여러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5 대 5 게임이라는 특성 상 불라불라... 근데 그런건 잘 모르겠고, 검증도 안될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분위기가 롤 밖으로, 그러니까 다른 게임들까지 퍼져나갔다는 점이다. 이제는 그 어느 게임에서도 패드립 없는 곳을 찾아볼 수가 없다(뜬금없지만 그런 점에서 슈퍼셀 게임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매우 칭찬한다). 그리고 삽시간에 그런 공기는 '한국 인터넷'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롤에는 '즐기려고'가 아닌, '말로 누군가 죽이려고' 게임에 접속하는게 아닐까 하는 무리가 점점 늘어났다. "엔터키를 뽑으면 랭크가 올라간다"는 말의 저의는, "채팅하려고 게임하는 부류는 애당초 랭크가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 부류가 적은 세상(즉 상위 랭크)으로 도망가야 한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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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몇 년 간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혐오의 시대였다. 도무자 혐오하지 않고는 몸이 간지러워 게거품을 무는 간질을 하나씩 앓고 있는 수준이었다. 나는 그러한 시대적 흐름의 저변에 롤이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고 상당히 확신하고 있다. 혐오 사회의 원인으로 수많은 인문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이 대중서를 썼지만 롤은 언급하는 책은 전혀 없다. 하지만 내가 볼 때는 리그오브레전드가 한국에서 전성기를 맞았던 시기와 (아주 웃기게도, 인터넷에서만) 남녀가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나있던 시기가 얼추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롤은 담배다. 그러므로 롤을 계속하면 질병에 걸릴 '수'도 있는 것이다. 개중에는 용케 잘 버티는 (튼튼한) 부류도 있다.

     

    롤이 담배와 같은, 혹은 담배보다 나쁜 점은...

    - 한 판 한 판이 엄청 길지 않아서 왠지 크게 낭비가 아닌것 같다(그런데 사실 한 판만 하고 끄기는 어렵다. 그리고 다 모아보면 엄청난 시간이 쌓여있다).

    - 성격이 더러워진다.

    - 딱히 몸에 좋지도 않다. 기분은 좀 좋을 수도 있는데 안좋아지는 경우도 있음.

    - 돈과 시간이 든다.

    - 이거 하느라 우정 또는 사랑이 박살나는 경우도 있다.

    - 적당히 하면 괜찮다.

    - 굳이 한다고 자랑하면 다들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롤은 그 자체로 매우 잘 만든 재밌는 게임이지만 동시에, 가래침과 눅진한 타르로 가득한 재떨이 대용 페트병에 들어가 있는 게임이라는 점에서 정말정말정말 주의를 많이 기울여야 하는 게임이다. 나는 누군가가 롤을 새로 하려는 기미가 보인다면 굉장히 적극적으로 말리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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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나는 가급적 우르프 모드만 한다. 우르프 모드는 전략게임이 아니라 리듬게임이라고 부르는게 더 적절하기 때문이다. 리듬게임은 기본적으로 모든 유저가 타자칠 여유가 없다.

     

     

    +) 2020.10.24. 요즘은 '확실히' 예전에 비해 롤이 클린해졌다. 또한, 요즘은 인터넷에서 '혐오 좀 그만해'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그런 목소리는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이젠 당당하게 제일 추천을 많이 받는 댓글 중 하나가 된 것이다). 독립? 인과? 인과라면 어느쪽으로? 나는 내 생각에 확신을 얻어갈 뿐이다.

     

    +) 2020.10.25. 이 글은 혐오 프로세스나 일련의 흐름, 혹은 그 끝에 대해서 논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 혐오가 '어디서 출발했는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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