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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닭갈비는 춘천이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는가
    프로그래밍/책과 영상들 2024. 2. 19. 23:34

    최근 전주에 갈 일이 있었다. 두 번째 방문이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무언가가 먹고 싶었다. 나는 유적이나 사찰에 별 관심을 느끼지 못하는터라, 기껏해야 그 지역에서 누릴 수 있는 귀한 체험이란 그 정도였다.

     

    유튜브 쇼츠에서 <전주에서 꼭 먹어야 할 7가지> 같은 영상들이 우르르 나왔다. 그러나 나는 댓글들에 더 눈길이 갔다.

     

    "객사나 신시가지나 한바퀴 둘러보면 끝인데 뭘 이렇게 여기저기 헤매냐"

    "전주 토박인데 초코파이 원래 이 지역 음식 아니예요 완전히 조작된 관광상품임"

    "길거리야 바게트도 한 번 경험하는게 좋은거지 맛이 각별한 건 아니예요"

     

    예상은 했지만, 흔히 들어본 유명한 음식들은 (즉 영상에서 소개된 음식들은) 다 조롱을 받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토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저 전주 20년 살았는데 여기 뭐 별 거 없음"

     

    이런 댓글이 진짜 너무, 너무, 너무 많았다. 그러니까... 극도의 확대해석을 하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조차 자기가 사는 곳에 자부심이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음식에 대해선.

     

    물론 모든 영상의 모든 댓글을 검수한 것은 아니지만, 이 시대의 수도권 포화현상과 기묘할 정도로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전주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춘천에서 닭갈비를 먹어본 사람들이, 춘천 닭갈비가 역시 차원이 다르다는 말을 얼마나 할까? 춘천 사람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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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수원에는 떡장이라는 음식이 있다. 떡장. 그런 단어를 생전 들어보기는 했는가? 

     

    이 음식은 떡볶이 국물에 밥과 김가루를 비벼먹는... 뭐 그런 음식인데, 분식에 가깝기 때문에 수원의 아주 특정한 지역에서 십대를 지낸 사람이 아니면 거의 알기 힘든 음식이다. 나도 마지막으로 먹어본지 15년은 된 것 같다 (와 세월... 체감 훅 오네). 수원 토박이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내가 갔던 평교 옆 떡장은 가게를 이전했다고 한다.

     

    나는 이 음식에 어마어마한 자부심을 느낀다. 서울로 수출되지 않은 수원만의 음식이기 때문이다. 2024년 2월 현재도 구글에 떡장을 치면 나오는 것은 수원뿐이다. 당신이 떡장을 먹어보고 싶다면 수원에 오는 것 말고는 별 방법이 없다.

     

    일본에선 각 기차역별로 파는 피규어가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오타쿠들이 피규어를 수집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각 지역에 가서 경제에 피를 불어넣게 되는 것이다. 나에겐 전주와 떡장의 예시가 일본의 예시와 퍽 맞닿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메타인지: 어릴 때부터 기존 시장에서 한 명의 플레이어로 치고 나가는 것보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미지의 블루오션에 관심을 보였는데, 위에 쓴 글을 보니 나는 정말 한결같구나. 어디에나 음식으로 차별화를 만들 생각을 하는 대신, 특정 지역에만 있는 음식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모든 생각들이 일관되게 한 방향으로 흐르는게 보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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