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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된 자기계발서를 읽는게 유용할까카테고리 없음 2025. 1. 19. 19:32
지나다니면서 오 재밌겠는데 하는 책들은 대부분 예스24 장바구니에 들어간다. '90일 안에 장악하라'는 그런 책 중 하나다. 이번에 이 책을 읽어볼까 하다가 우연히 어떤 깨달음에 도달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저의 산책을 따라와주시라.
그 출발점은 내가 도서관에서 빌리려는 책이 이 표지와 다른 그림이었다는 부분이었다. 도서관에 있는 책은 아래와 같은 모양이었다.
딱 봐도 위에 것이 개정판이리라. 개정되었다는건 보통 저자가 "시대가 달라져서 이러이러한 내용을 넣거나 뺐습니다"라는 뜻이니까, 나는 가급적 신판이 읽고 싶었다. 하지만 큰 차이가 없다면 구판을 그냥 읽어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90일 안에 장학하라 개정판 차이" 같은 검색어로 구글링을 했지만 신통한 결과는 얻지 못하였다.
이 책은 총 세 권의 번역서가 있다.
재밌는 것은 원서의 출판년도다.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인 2003년에 처음 출간되었으며, 2013년에 한 번 개정되었다.
그러고나서 예스24의 책 목록을 다시 보았다. 2014년 번역서는 2013년 원서의 번역이라고 치자. 그럼 대체 가장 최신 버전인 2018년 번역서는 무엇을 개정했다는걸까? 원서는 판본이 두 개 뿐인데 말이다. 해당 책 상세 페이지의 책 소개 섹션에 이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이번에 새롭게 출간되는 개정증보판은 초판보다 내용이 훨씬 구체적이고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다. 초판에 있던 그림과 표 중에서 단순하게 표현된 것들을 수정하거나 뺐고, 대신에 자세한 설명이 포함된 그림과 표가 새로 첨가되었다. 각 장 끝에 있는 체크리스트가 대부분 바뀌었고, 서론에 초판에는 없던 체크리스트가 새롭게 들어갔다. 각 장의 초반에 언급하는 사례들이 새로운 것으로 바뀌었다. 또한 개정증보판에는 출간 10주년 기념 서문이 포함되어 있다" (출처 : https://www.yes24.com/Product/Goods/58543992)
근데 (위 세 번역서 중 가운데에 있는) 2014년 개정증보판에도 10주년 서문이 있고, 체크리스트나 목차도 최신판의 그것과 동일해보여서, 2014년 판과 2018년 판의 차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흠, 잠깐 얘기가 샜는데, 어쨌든 서구권에서 2003년에 발간된 책이 한국에서 2018 년에 새로 에디션이 나왔다는 사실이 나에겐 꽤 충격적이었다. 이거 조금만 비열하게 묘사하면, 우리는 미국보다 15년 늦게 움직이고 있다는 뜻 아닌가?
이게 우연인지 아닌지 헷갈려서 책을 하나 더 골라보았다 (이 또한 나의 장바구니에 있다). 이 책은 최근 링크드인에서 살짝 인기를 끌었던 '성과를 내고 싶으면 실행하라'라는 책이다. 번역서는 2016년에 출간되었다.
오 맙소사. 이 책은 더 심각했다. 원서 초판은 2012년 출판되었고, 개정판은 2021년에 출간되었다. 즉, 위 번역서는 개정판의 내용을 포함조차 못하고 있다. 아래 이미지는 원서의 2nd 에디션.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마지막으로, 지금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자기계발서를 찾아보았다.
예스24에서 자기계발 섹션으로 가보니 메인 화면에 '스타트 위드 와이'가 있었다.
오! 사이먼 아저씨 책이구나. 나도 이 분 좋아한다.
wow.
여기까지 찾아보고나서, 아래와 같은 생각들을 두서없이 떠올렸다.
- 한국은 일본의 흐름을 약 10년 뒤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던데. 일본에 한정된 농담(?)이 아니었나?
- 한국에서 이러한 책들이 유행을 한다는 것은 십 몇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한 교훈들이 존재한다는건가, 아니면 우리나라가 세계의 트렌드를 그만큼의 간격을 두고 따라가고 있다는건가.
- '유행'하는 건 진짜다. 근데 실제로 '유용'하게 기능하고 있는건가?
- 출판사도 안 팔릴 책을 무턱대고 번역할 수도 없을 것이고, 팔리는 것을 확인하고 번역을 시작하면 시간이 또 늦을 것이고... 그러면, 원서(즉 영어판)를 읽지 않으면 결코 세계의 최전선을 따라잡지 못하는건가?
- 생각해보니 해외 기술 컨퍼런스에선 더이상 애자일을 논하는 영상을 보기 어려운 것 같다. 반면에 한국 대기업들의 블로그에선 여전히 간간히 애자일 언급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이 부분은 단순히 기분 탓인것 같기도).
뭔가 빨간약을 먹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P.S. 책의 역대 에디션을 조회하는 것이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공식적으로 그런걸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예 없는듯.
P.S.2. 위 생각들에는 여러가지 지레짐작이 섞여 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말길.
+) 2025.02.04 내용 추가
오늘 KSH 님과 대화를 하다가, 아마존 Books 를 가보니, 거기 베스트셀러들오 우리나라의 위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들이 있다"가 가장 설득력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