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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구체적으로 하자카테고리 없음 2025. 4. 7. 08:00
짧고 간단한 질문은 던지기 쉽다. 맥락도 없고, 조건도 없이, 그냥 물어보면 된다. "제가 어떤 직업을 가지면 좋을까요?"
그러면 질문을 받은 답변자는 둘 중 하나의 전략을 고른다. 누구에게나 들어맞는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하거나, 이 질문자의 특성에 맞는 답을 해주거나. 후자를 위해선 당연히 질문자에게 역질문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 후자를 고르는 답변자는 아주 드문 편이다.
질문자의 레벨을 세 단계로 나눠보자. (1) 질문하지 않는 자, (2) 잘못 질문하는 자, (3) 잘 질문하는 자.
우선 (1) 에 머무르는 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2) 까지만 올 수 있어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만족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리고 (2) 를 건너뛰고 (3) 으로 갈 수는 없다. 우리 모두 '어디부터 물어봐야 되는지조차 모르는 (일명 unknown unknown)'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2) 단계에 심각한 함정이 하나 있다. 아무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얻은 것만으로 '무언가 얻었다'는 기묘한 환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일반론적인 답변을 주었을 때, 그것이 질문자의 상황에 들어맞을 가능성은 굉장히 희박하다. 들어맞았다 쳐도, 질문자가 그 접근법을 실제로 채택하고, 수행하고, 성과까지 낼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질문자 스스로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선 "이것은 나에게(만) 하는 얘기가 아니야"라는 생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게 시중에 자기계발서 책이 넘쳐나고 팔리고 팔리고 또 팔리는 이유다. 그 책들은 다들 좋은 말을 한다. 진짜로, 좋은 말들로 가득차있다. 그러나 대부분 '정확히 나'를 위한 말은 아니다.
따라서 질문자가 정말로 무언가 답을 구하고 싶다면, 질문은 반드시 아주 아주 아주 아주 구체적이어야 한다. 상대가 그 질문에 한 번에 답을 못해야 한다. 고민하게 만들어야 한다. 상대가 쉽사리 대답하기 힘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나의 상황과, 나의 생각과, 내가 해본 것과, 하지 않은 것과 하지 않은 이유들과, 굳이 굳이 질문자 당신까지 찾아온 이유를 모조리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거기까지 고려하고 나면, 질문을 추려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답변자에게 두 시간 세 시간 내 상황만 설명하고 있을 순 없으니, 정리하고 간추리고 요약해서 말을 꺼내야 한다. 질문의 대다수는 이 과정에서 그냥... 사라진다. 그 질문을 하는 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된다. 따라서 이 시점은 겉으로 볼 때 (2) 단계에서 (1) 단계로 퇴보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P.S. 스택오버플로우라는 사이트가 성행하던 시절엔, '수준낮은' 질문들이 올라오면 '혼나는' 것이 가능했다. 어떤 질문이 좋은 질문인지 (썩 기분좋지는 않은 형태로) 배울 수 있었다.